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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 안양·과천의 경계에 있는 산
  높 이 : 629 m
주봉우리 : 연주대
문화재 : 삼막사
  높이 629 m. 북한산(北漢山) ·남한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방벽으로, 옛 서울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주봉은 연주대(戀主臺)이며, 산정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중에 연주암(戀主庵) ·자왕암(慈王庵) ·불성사(佛成寺) ·삼막사(三幕寺) 등의 산사가 있다. 이중 삼막사는 원효 ·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산 북서쪽 기슭에 서울대학이 자리하며, 산정에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수리산: 안양시와 시흥시 장상동과 군포시 산본동 및 화성군 반월면 속다리에 있는 산.
  산행코스
☞ 주 등산로
병목안 주차장 ⇒ 덩굴터미널 숲 ⇒ 만남의 광장 ⇒ 백영약수터 ⇒ 태을봉 ⇒ 수리산
☞ 부 등산로
▷ 안양서여자중학교 ⇒ 독서하는 숲 ⇒ 한마음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현충탑 ⇒ 팔각정 ⇒ 한마음 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소골안 ⇒ 전망대 ⇒ 태을봉 ⇒ 수리산
▷ 성문여자중학교 ⇒ 덩굴터널숲 ⇒ 봉수정약수터 ⇒ 명상의 숲 ⇒ 시관모봉
⇒ 태을봉 ⇒ 수리산
교통편
☞ 대 중 : 안양시내버스 10, 11-3, 13, 16 (소요시간 : 15분)
☞ 자가용 : 안양역에서 병목안 방향으로 직진하여 병목안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00m가량 올라오시면 병목안 주차장이 있음. (소요시간 : 10분)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信心을 닦는 聖地의 절이라 하여 修現寺라 했는데, 그 후 산명도 寺名을 취해 「修現山」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아주 먼 옛날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때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또 안산지방에는 예로부터 秀岩峯의 옛 이름인 독수리봉(鷲岩)에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北崖老人의 《揆園史話》상권 檀君記에 「동방의 여러 산에 馬耳, 摩尼 등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세상 사람
  들이 모두 摩利로 부르고 일찍이 서로 구분하지 않았다.
대개 마이와 마니는 머리 「頭」字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금 廣州에 修理山이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수리산(鷲山)이다」 고하여 「독수리봉」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李世鍾 성결신학대학 교수는 수리산에 대해 <수리산 散稿> 라는 시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수리산에는 큰 바위가 별로 없다. 가파른 벼랑도 없고 숲이 울창한 土山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그 약수터에는 남녀노소들이 끊일 사이가 없이 모여들고 산새들은 한가로이 지저귄다. 골골마다 산채와 약초가 무성하고 옛날부터 사찰이 없는 유명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산이다.
안양은 그 수리산 기슭에 터를 닦았고 수리산은 도시화되고 대형화되어 가는 안양에 경이로운 산이 아니라 적당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人間性 回復의 機會를 제공하며 안양을 싸잡고 지키는 자애로운 암탉이다.
수리산, 수리산이란 무슨뜻일까?. 「살다」(生)의 語幹 「살」에서 파생된 언어로 「쌀」등 米의 뜻이 있고 곡식(主食)에 「입쌀」「좁쌀」「수수쌀」「보리쌀」등등 生活生命과 연상된 언어가 되었다.(지금도 경북 方言에서는 「쌀」「살」이라고 한다)生活에 곡식만큼 중요한 필수품이 연료였다. 紫炭中에 중요한 것이 松林이다. 「솔나무의」「솔」은 「솔」에서 語原을 찾아야 한다는 學說이다. 전국 지명이나 산명 가운데 「수리」「설악」「설원」등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살」에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一說에는 「수리」「수리치」「수리골」「수리재」「수리절」등등의 명칭은 단오 명절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오 때(초여름)沐浴하고 산채를 뜯던 풍속과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수리란 이름을 가진 지명에는 반드시 냇물 또는 시내가 있고 산채 「수리치」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수리산은 이 지방에 紫炭과 산채를 풍성히 공급하던 산이고 여름이면 목욕하고 빨래하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밤나무가 많아 알밤을 줍던 정든 터전이 있으며 머루와 다래와 개암이 영글어 가던 유명하기를 거부한 안양 정신의 母胎였다.

<자료> : 이중환 <택리지> 1714, 이긍익 <연려실기술> 1934, 본말사주지회 <용주사본말시지> 1984, 조선일보 <월간 산> 1988.5, 방극인 <수리산> 안양문화 3-1984, 안양시 <수리산산림욕장현황> 1990, <수원신문> 1990.6.9, <수원신문> 1990.6.16, <경기평론뉴스> 1990.9.15


삼성산: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행코스
☞ 주 등산로
안양유원지 수목원입구 주차장 ⇒ 염불암 ⇒ 삼성사
☞ 부 등산로
▷ 안양유원지(안양풀장) ⇒ 안양사 ⇒ 학우봉 ⇒ 삼성사
▷ 안양유원지(입구) ⇒ 유유사업 ⇒ 삼막봉 ⇒ 학우봉 ⇒ 삼막사 ⇒ 삼성사
▷ 안양 석수IC옆 주택가 산 123-1번지 ⇒ 불영암 ⇒ 찬우물 ⇒
삼성산 ⇒ 삼막사
▷ 석수역 백조아파트뒤산 ⇒ 불영암 ⇒ 처우물 ⇒ 삼성산 ⇒ 삼막사

교통편
☞ 대중 : 안양시내버스 1, 51, 99, 103, 103-1, 104-1, 703
(소요시간 : 10분)
☞ 자가용 : 안양역에서 서울방향으로 직진하여 안양대교에서 우회전하여
직진 하시면 안양유원지 주차장이 있음. (소요시간 : 8분)
 
  성종 때 (1484 )盧思愼 등이 선종의 명을 받들어 大明一統志 본떠 저술한< 東國餘地勝覽> 금천현 산천조에 「삼성산, 현동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 三聖山左縣東十里鎭山) 라고 하였고, 같은 책 과천현 산천조에 「관악산, 현 서쪽 5리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 (冠岳山左懸五里鎭山) 라고하여 삼성산은 금천현의 관아가 있는 지금의 서울시 구로구 시흥 2동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금천현의 진산 (각 고을을 鎭護 하는 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이를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또 삼성산과 관악산의 山界에 대해 안양의 원로들이 증언하는 바를 종합하면 대체로 삼막사 동쪽에 있는 계곡을 따라 동쪽에 있는 계곡을 따라 동쪽이 관악산이고, 그 서쪽에 위치한 지역이 삼성선인데, 이산계가 조선시대에는 과천현과 금천현의 縣界가 되었고, 후에는 과천시와 안양시의 市界가 되었다고 한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보통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 (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 「三聖山」 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敎主인 아미타불과 그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간행된 <시흥읍지>, <시흥현읍지>, <시흥군읍지>, 말기에 불교계를 이끌던 懶翁 (1320∼1376), 無學(1327∼1405)과 인도승려 指空 (?∼1363) 이 이곳 삼성산에 올라가 각기 수도학 자리를 잡고 전진 했다는 연고로 「三聖山」이라 했다.(三聖山左縣東十里無學懶翁指空三釋各三精監而居之因三聖山)는 것인데, 이상의 세 유래 중 두 번째는 입증할만한 문헌이 전혀없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한결같이 당대의 고명한 세 고승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 전자는 삼막사가 창사한 677년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이를 뒷받침 할만한 史料가 없고 극히 일부의 寺史에만 그 기록이 전해지고 있을뿐이며, 후자는 사사가 아닌 읍지 지리지 등 관찬과 사찬 등의 여러 문헌에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후자의 지공, 나옹, 무학의 삼성설이 가장 믿을만한 정설로 생각된다.

산중에는 산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삼성사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白沙 李恒福(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강점기에 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 (900) 왕건이 衿州, 果州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자료 >
노사신<동국여지승람>, 1481, 시흥군<시흥군읍지> 1899,의정부<기전읍지> 고종조, 시흥군 <경기도 시흥군읍지> 1899, <경기지>고종조,<경기읍지>1871, 이승언<안양의 유래> 안양문화 4-1985,조선일보사 ,월건 산>
1988-1,시흥군지편찬위원회 <시흥군지>(下)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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